그리스로 떠나기 한참 전에 내가 인스타그램에 썼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 여행은 항상 그와 같이 발화한다. 올해는 이렇게 썼다.

/재작년엔 그리스에 가길 염원했고 작년에 갈 수 있었다. 작년 모스크바에선 조지아에 가길 염원했고 올해 갈 수 있을 것도 같다 ! 마음 먹기 따라 다르지만 될 것 같은 느낌. 이런 계기들이 있는 적당히 건강한 삶 좋다./

나의 자발적 첫 해외여행은 유럽이었다. 가족과 같이 다녀온 일본, 고등학교 때 학교 교류로 다녀온 싱가포르 빼고 내가 모두 계획해서 이행한 것 말이다. 그렇게 철저히 도시 중심의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이상하게 도시보다 자연을 먼저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녀온 첫 나라가 작년의 그리스다. 올해 내가 머무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3월 연휴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부터는 원래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조지아, 아르메니아까지 다녀오는 코카서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 여유의 문제로 이것이 틀어지게 되면서 한참 고민했다. 연휴 동안 우즈벡에서 충분히 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뭔가 끌리지 않았다. 사실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수능이 끝나고 시작한 첫 과외부터 해서 삼 년간이 넘게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해 왔음에도 내게는 목돈이 없다. 이유는 뚜렷하다. 나는 어느 정도 돈이 생기면 그걸 늘 여행에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다 쓴다는 말이 마음에 안 드니까 투자한다고 해야지.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한참 동안 마음 속에 간직해 두다가 어느 순간 그 곳을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향하는 편이다. 애초에 노후가 보장된 오랜 삶에 흥미가 없기도 하고, 그때그때의 욕망을 충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관과 부합하기에 수많은 즉발적 욕구들에 주저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내겐 더 좋기 때문이다.

코카서스 3국을 모두 포기하기에는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일을 안 하면서도 계속 어느 곳을 가야 할까 생각하며 인터넷 창을 켜서 아제르바이잔 여행, 아르메니아 여행, 조지아 여행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을 거쳐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간 사람들의 여행기였다. 타슈켄트에서 우르겐치, 히바를 거쳐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배나 비행기를 타는 경로였다. 히바는 어차피 우즈벡에 머무르는 동안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로 정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악타우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정하는 여행지에서 벗어난 곳을 간다고 타인에게 말하면 왜 굳이 거기를 가? 라고 되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가 거창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혹은 조금 이상하다(순화해서 말하면 특이하다였다)고 말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실제로 악타우로 나를 이끈 건 사진 한 장 그리고 세련된 타이포 하나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계단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고서야 아, 악타우를 충분히 거쳐 갈 만한 메리트가 있겠다 싶었다. 우르겐치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가면 닿게 될 베이네우 역의 감각적인 간판도 한몫했다.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희한하게 이끌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게 여행의 이유가 되어서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어떤 것에 이끌리든 결국 나는 향하게 되고, 향한 그 곳에서 조금 더 넓고 다른 내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은 또, 사무실 책상에서 나는 이상하게 이끌렸다. 히바, 악타우를 거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년의 여행만큼 큰 설렘이 따라오진 않았지만 묘하게 잔잔한 물결들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씩 나를 간지럽혀서 못내 움직여 버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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