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서 일단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아래는 친구들이 말해준 리스트

1. 언어감각이 뛰어나다 - 그래서 그 언어감각을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살리는 말에 쓰기도 한다. 
2. 멋진 것을 탐지해내는 취향 레이더를 가지고 있다. -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분야(옷, 음악, 소품 등)의 다양한 것들을 디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점 때문에 돈을 많이 쓴다. 
3. 탐구력이 좋다. - 대상의 특징을 잘 캐치해내는데 이건 아마도 내가 그 대상들에 대해 관심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피곤하기도 하다.
4.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해 본다. - 무언가가 하고 싶으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도전해 본다. 그걸 끝마치는 능력은 쫌 부족해서 벌려놓은 일은 100갠데 마무리한 건 없다.
5. 멘탈이 강하다. 멘탈이 강한지는 모르겠는데 하루하루 강해져 가고는 있다 (노비로 이리저리 구르면서..) 금주엔 내 전임자가(10년차 대리, 이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게 돼서 나는 입사 한 달만에 팀이 바뀌어서 그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을 인수인계 없이 바로 넘겨받았고 머리 퍽퍽 치면서 능히 해낸다 모드 중) 어머니 암 말기라며 한국 들어간다더니 아직도 모스크바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걸 알고도 그냥 헛웃음 짓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박박 화내거나 울었을 텐데.... 그래도 이 자를 죽이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6. 모든 일에 주도적이다. - 성격이 급한 탓에 답답함을 잘 참지 못해서 스스로 많이 해나가려는 편이다. 그래서 주도적이라고 비춰진 것 같다. 
7. 귀엽다. (ㅋ)
8. 오렌지색이 잘어울린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칭찬이자 스스로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sun-kissed 라는 수식어를 스스로의 슬로건으로 밀고 있다. 오렌지 머리, 오렌지색 옷, 오렌지 암튼 다 좋아~
9. 존재 자체로 본새난다 (??)
10. 격해질 수 있는 상황에 감정 컨트롤해서 참을 줄 안다. (그렇지만 가끔 격할 필요 없는 상황에서 격해진다 ㅎ)
11. 호기심이 많다.
12. 자기객관화를 잘 한다. (=스스로의 분수를 안다)
13. 이타적이다. 
14. 절대음감을 갖고있다. 노래를 잘 부르고 피아노를 칠 줄 안다!
15. 친해지면 마음을 잘 연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 생각해 봤다.

16. 회복탄력성이 높다. 마음이 변화무쌍해서 작은 일에도 기분이 잘 바뀌지만 다시 말해서 곧바로 회복한다는 뜻. 그리고 점점 스트레스에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
17. 스스로의 스트레스 회복 수단이 있다.
- 뜨거운 샤워 후 술 말아서 좋아하는 향수 침대에 뿌려놓고 누워서 멍때리기, 디제잉 연습, 달리기 글고 책 읽기
18. 정이 많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잘 상처받기도 한다.
19. 많은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가끔 좋아하는 사람의 말버릇까지도
20. 아날로그 친화적이다. 그래서 더 많은 매체를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21. 넓은 세계를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22. 잠을 잘 잔다. 너무 잘 자서 탈이지만
23. "여자치고^^" 롤을 잘 한다. 난 리그오브레전드를 너무 좋아해서 시즌 2부터(중2였다..) 쭉 플레이하고 있다. 만년 골딱 플딱이지만 암튼 꽤 잘 한다. 물론 여자^^ 치고.. 이 코멘트를 들을 때마다 성별 상관없이 존나 잘 하고 싶단 생각을 하지만 피지컬 뇌지컬 다 딸려서 그건 안 되더라. 쩝
24.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알아본다. 
25. 노래부르고 춤출 줄 안다!!!!!
26.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정신 건강 몸 건강


27. 격변하는 시대에 태풍의 최전선에서 살고 있다 (하하)
28. 나에게 해로운 사람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9. 디제잉 기계가 있다. 어제 삼 ㅋ
30. 20대 중반이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낭만(=철없음)이 있다 ~
31. 맛있는 크림 파스타를 요리할 줄 안다.
32. 숫자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고 있다.
33. I이지만 때에 따라 E의 자아를 발현시킬 줄 안다.
34.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곁에 있다 !
35. 누구에게든 인사를 잘 한다.
36. 집이 더러워도 참고 살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청소를 뒤지게 안한다)
37. 소비의 요정이다 (= 돈을 많이 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
38. 수영은 못 하지만 여름을 즐길 줄 안다.
39. 자존심이 세다. 이것은 대체로 난제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뭔가 꾸역꾸역 해내게 하는 능력이 된다. 
40. 책을 많이 읽는다. 비록 장르가 편향되어 있을지라도..

41. 기록을 좋아한다. 사진이든 글이든 뭐든 어떠한 형태로 나를 남겨 놓는 작업이 좋다!
42. 필름카메라를 종종? 잘? 사용한다. 
43. 정이 많다. 그래서 사람을 한 번 좋아하면 심각하게 좋아하고 혼자 상처받음
44.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꼭 마음속에 인지하고 있으려 노력한다.
45. 취향의 물건들에 돈을 가감없이 쓸 수 있다. 
46. 체모가 없다 와하하~~~~~ 태어나서 팔다리 제모를 한번도 안 해봤다.
47. 나름 건강한 편이다. 지병이 없다. 
48. 승부욕이 강하다. 특히 몸 쓰는 거 말고 머리 쓰는 데에!
49. 여태까지 쓴 일기를 모두 갖고 있다. 웹에도 있고 실물 일기장도 있는데 이것들은 내가 힘들 때 큰 도움이 된다.
50. 김승일 시인을 좋아한다. 

51. 죽음에서 사로잡혔다 벗어나서 이제는 행복을 향유할 줄 안다~
52. 51과 같은 맥락에서, 마미 이슈를 극복하고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53. 새벽을 사랑한다
54. 53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어린이 생활 중
55. 올해 학사 재입학할 예정이다. 이토록 무모하고 아름답고 용기있는 나 ~~~ () 
56. 꾸준히 달리기를 한다. 
57. 꾸준히 요가를 한다. 
58. 회사에서 아방수 신입 포지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고 있다. 이것은 정시출근 칼퇴 한다는 뜻 그러나 1인분은 하고 있다고 믿어요?
59.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두 개를 가지고 있다. 두 개 간의 스위칭 잘 하는 편
60. 여행을 좋아했다.

61. 남들이 잘 안 가 본 국가들에 가 본 경험이 있다. 요르단,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그리스 이런 곳
62. 넓은 시야를 가지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인풋을 최대화하려 한다.
63. 꾸준히 영어와 러시아어를 공부한다. 제3외국어도 공부하고파!
64. 영어와 러시아어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려 노력한다. 
65. 그래서 치우치지 않은 사고를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66. 테크노 여전사로 데뷔할 준비가 되었다. 
67. 화끈하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망설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기 가능 
68. 타인의 멋짐에 쉽게 감회된다. 
69. 누구든 존중할 줄 안다. 물론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은 존중하지 않게 된다. 
70. 노래방에서 모든 장르의 노래 부르기 가능. 오페라 넘버도 가능. 

71. 정직하다. 아첨 아부 못 한다. 마음에 없는 말 못 한다.
72. 그러나 사회적 자아와 함께라면 마음에 없는 말은 못 해도 관심 없는 말은 적당히 잘 맞장구칠 수 있다.
73. 종로구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창경궁 창덕궁과 광화문 교보문고 그리고 우리 학교!
74. 별 알바를 다 해봤다. 스키장 리프트 알바도 해봤다. 네~ 폴스틱 조심히 들어주세요~ 다리 들어주시고 안전바 내리실게요~
75. 속독의 왕이다. 책을 죤 빨리 읽는다. 근데 금방 까먹는다. 
76. 타자가 빠르다. 게임 채팅과 버디버디로 다져진 실력 
77. 말보다 글이 편하다. 글로 내가 원하는 바를 조리 있게, 감정 담아, 잘 표현할 수 있다. 
78.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미치는 영향에 둔감하다. 연습 중
79. 대학 다닐 때 술 먹고 수업 째고 출튀하고 청강도 해 보고 암튼 다 해 봄 ! 금잔디에서 낮잠도 잤다.
80.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 

81.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82. 러시아어로 싸움 가능하다. 개빡치는 일상의 순간들에서 따지고 들 줄 안다. 러시아어로 말싸움 이겨본 적 있다.
83. 그러나 대개의 경우 품위 및 사회적 체면 유지에 충실한다. ^.^
84. 술을 마시면 용감해진다. 
85.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필요할 때는 용감해진다. 물론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86. 눈치가 빠르다. 남들을 파악하는 데에 그만큼 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만 눈치 없게 굴어 불이익 보지는 않는다.
87.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잘 캐치하는 편
88. 여러 백그라운드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국적 불문 성별 불문 나이 불문 
89. 카우치서핑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아주 즐거웠다.
90. 스스로의 브랜드를 운영해 본 적 있다. (@dysha_kr 현재는 잠정 휴업중)

91. 회사에서 딴 짓을 걸리지 않고 잘 할 수 있다. 지금도 이거 쓰고 있다.
92. 나의 상태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말이 나오지도 않을 만큼 이상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93. 타인의 사정에 대해 헤아릴 줄 안다.
94. 그러나 동시에 매우 이기적이다. 난 내가 젤 중요한데 이게 단점이자 장점이라 생각한다.
95. 나와 친해져 가고 있다.  

96. 운이 좋다. 대개의 경우 운이 좋았었다고 생각한다. 
97. 같은 맥락에서 인복이 좋다. 꼭 한 번씩 좋은 일이 생긴다! 타인 덕분에!
98. 살아 있다! 그것도 러시아에서 ! 잘 !
99. 평화를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평화에 감사하고, 모두에게 평화가 주어지기를 늘 바란다. 
100.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타투들이 있다 ^-^ 궁금하시다면.... 더보기

우스갯소리로 늘 독일에선 강아지가 외국인보다 우선순위라는 농을 한다. 이 농은 내가 외국인으로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순간 나는 그냥 그 곳에서 살아가는 임주리가 아니라 외국인 임주리가 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인종과 성별을 떠나 한국 밖에 존재하는 순간 나는 어떤 다른 사람이 된다.

이센스의 새 앨범 <이방인> 중 김심야가 피처링한 <clock> 이라는 노래가 있다. 거기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리곤 다 내려놓고 먼 곳의 어느 도시에
서울과는 다른 밤과 다른 표정에
섞여 살고 싶어 내가 살기에 여긴 불편해
허나 도피의 끝에 새 땅은 없지 늪이야
난 깊숙히 내 기둥을 꽂을 준비하지
그 수표에 적힌 평온의 값
그게 얼마든 줄테니까 내게 삶을 내놔/

오래간 기다리던 이방인 앨범이 나오자마자 이 부분만 몇 번이고 계속 돌려 들었다. 서울을 끔찍하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오는 이유는 이 가사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내 홈그라운드. 내가 온전한 언어로 완전한 한 명의 사람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곳이기에 나는 외국에 있는 동안 서울을 끊임없이 회피하면서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를 무수히 바라기를 반복한다. 서울에서의 삶이 싫다. 이 곳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서울과는 다른 밤을 살고 싶다. 그렇지만 그 곳에 내가 오롯이 존재할 땅은 아주 좁거나 그냥 없기도 하다.

해외에 오래 나가 있던 건 아니지만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는 말은 이제 어디에서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웃으면서 김정은 사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짬을 갖추는 동시에 너덜한 마음을 벼리는 법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가장 고단한 건 결국 내가 어떻게 노력하든 그들의 생활에 녹아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을 때다. 그들의 언어를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되는 건 아니다. 도리어 어 너 외국인인데 우리말 잘 하네? 어디서 배웠어? 라는 기분 좋지만 불쾌한 칭찬을 받는다. 말을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될 순 없다. 물론 이건 내 외국어 실력이 정말 원어민 만큼은 아닌 탓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 말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90만큼 표현한다 치면 러시아어론 그걸 반도 못 말한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생각이 원하는 형태로 발화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하는 건 퍽 절망스러운 일이다. 마음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생각들은 결국 내부에 고이고 그걸 토해내기 위해 아무리 많은 작업을 해도 결국 찌꺼기가 내 안에 남는다. 그 찌꺼기가 쌓여 다른 생각조차 못 나가게 막고 그것에 결국 우울해지는 거다. 그러니까 해외에서 산다는 건 이렇게 절망스러운 게 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서울에서 영원히 이방인이 될 수 없다. 내가 싫어하는 한국인의 모습들 그리고 성향들을 문득 내게서 발견할 때 나는 해외에서 느낀 절망감의 곱절을 느낀다. 내가 싫어하는 부모님의 면모를 닮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이다. 싫어하고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에 형성된 내 성정. 빠르지 못한 서비스를 규탄하고, 거시적인 문제를 작은 것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는 소시민적 면모를 가지고,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을 떼어놓지 못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것들은 나를 한국인으로, 서울 사람으로 만든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끄러운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이랑이 <신의 놀이> 일 절에서 던지는 물음들을 스스로도 던지고 있는 거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나. 서울의 파괴적인 면모들을 미워한다. 한국인들에게도 내재된 그런 면모들이 내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너무 내 것인 점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기꺼이 절망스러운 이방인이 될 것 같다. 조금은 덜 절망스러운 이방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나를 끼워넣으면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을 퍽 즐기니까 그 곳에서는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는 것도 좋겠다. 그 곳에 녹아들려고 애쓰는 대신 내가 느끼는 절망을 양분으로 바꾸어 낼 능력을 가지려고 애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결국 하나의 인격체로 설 수 있는 서울로 돌아오고 말겠지만.

그리스로 떠나기 한참 전에 내가 인스타그램에 썼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 여행은 항상 그와 같이 발화한다. 올해는 이렇게 썼다.

/재작년엔 그리스에 가길 염원했고 작년에 갈 수 있었다. 작년 모스크바에선 조지아에 가길 염원했고 올해 갈 수 있을 것도 같다 ! 마음 먹기 따라 다르지만 될 것 같은 느낌. 이런 계기들이 있는 적당히 건강한 삶 좋다./

나의 자발적 첫 해외여행은 유럽이었다. 가족과 같이 다녀온 일본, 고등학교 때 학교 교류로 다녀온 싱가포르 빼고 내가 모두 계획해서 이행한 것 말이다. 그렇게 철저히 도시 중심의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이상하게 도시보다 자연을 먼저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녀온 첫 나라가 작년의 그리스다. 올해 내가 머무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3월 연휴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부터는 원래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조지아, 아르메니아까지 다녀오는 코카서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 여유의 문제로 이것이 틀어지게 되면서 한참 고민했다. 연휴 동안 우즈벡에서 충분히 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뭔가 끌리지 않았다. 사실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수능이 끝나고 시작한 첫 과외부터 해서 삼 년간이 넘게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해 왔음에도 내게는 목돈이 없다. 이유는 뚜렷하다. 나는 어느 정도 돈이 생기면 그걸 늘 여행에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다 쓴다는 말이 마음에 안 드니까 투자한다고 해야지.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한참 동안 마음 속에 간직해 두다가 어느 순간 그 곳을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향하는 편이다. 애초에 노후가 보장된 오랜 삶에 흥미가 없기도 하고, 그때그때의 욕망을 충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관과 부합하기에 수많은 즉발적 욕구들에 주저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내겐 더 좋기 때문이다.

코카서스 3국을 모두 포기하기에는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일을 안 하면서도 계속 어느 곳을 가야 할까 생각하며 인터넷 창을 켜서 아제르바이잔 여행, 아르메니아 여행, 조지아 여행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을 거쳐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간 사람들의 여행기였다. 타슈켄트에서 우르겐치, 히바를 거쳐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배나 비행기를 타는 경로였다. 히바는 어차피 우즈벡에 머무르는 동안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로 정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악타우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정하는 여행지에서 벗어난 곳을 간다고 타인에게 말하면 왜 굳이 거기를 가? 라고 되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가 거창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혹은 조금 이상하다(순화해서 말하면 특이하다였다)고 말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실제로 악타우로 나를 이끈 건 사진 한 장 그리고 세련된 타이포 하나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계단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고서야 아, 악타우를 충분히 거쳐 갈 만한 메리트가 있겠다 싶었다. 우르겐치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가면 닿게 될 베이네우 역의 감각적인 간판도 한몫했다.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희한하게 이끌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게 여행의 이유가 되어서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어떤 것에 이끌리든 결국 나는 향하게 되고, 향한 그 곳에서 조금 더 넓고 다른 내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은 또, 사무실 책상에서 나는 이상하게 이끌렸다. 히바, 악타우를 거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년의 여행만큼 큰 설렘이 따라오진 않았지만 묘하게 잔잔한 물결들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씩 나를 간지럽혀서 못내 움직여 버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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