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주리입니다.
주리 씨는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있어요? 나무가 자라는 걸 본 적이 있나?
어떤 것을 근거로 내가 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나, 아니 그것 이전에 나무가 자라는 걸 내가 체감한 적은 있었나, 하고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말들을 둥글렸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망설이니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이 돌아왔다. 나무는 한 번에 훅 자라지 않아. 그리고 한번에 쭉 자라서 사람 보기에 좋은 것들은 대개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들었음에도 아리송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리 씨가 지금 그런 나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야.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사람들 시선 신경쓰면서 사는 삶은 결국 자기에게는 허울뿐인 삶이에요. 다른 사람 보기에 안 좋아 보이면 어때? 그런 것들에 일일히 집착하다 보면 결국 자기 모습이 자기 모습이 아니게 돼. 그러다 보니까 우울증도 오는 거야.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턱 막힌 목을 닫고 눈물 맺힌 눈으로 끄덕이기만 하는 것뿐이었다. 나를 본 지 삼 분도 안 된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파당한다는 사실은 신통함을 느끼기보다는 부끄러움을 온 몸 가득 뒤집어쓰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과도 같음을 느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존감도 높일 필요가 있어요. 나는 잘난 사람이다, 내가 하는데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해? 뭐라고 해도 난 흔들리지 않아,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재차 묻는 상대의 말끝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그 와중에도 우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이미 눈물이 그렁해서 숨길 수가 없었다. 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척하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네-에-알-겠-습-니-다. 한 자 한 자 끊어서 뱉어내는 음절들이 잘게 떨렸다. 엄지손톱으로 괜히 검지와 중지 안 쪽 여린 살만 꾹꾹 눌렀다. 울음을 참는 데에 그렇게 큰 효과는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항상 증오했다. 인터넷 어떤 매체에서 자기혐오도 자기애의 일종이라는 글을 보면서 그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를 혐오할 수밖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신빙성 없는 매체의 확실하지 않은 근거로도 입증될 만큼 나의 내부에서 무겁게 자리한 논리였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자기애와 자기혐오는 유리창 양 쪽으로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 내가 나의 결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내 전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물 셋이 되고 자존감 자신감에 대해 부쩍 자주 말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항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뿌리는 아무래도 깊게 자리잡지 못한다. 어쩌면 이미 깊게 자리잡은 자기애의 뿌리를 계속 자기혐오로 오독해왔던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면 늘 그랬다.
눈물을 말리려 무수하게 눈을 깜빡였지만 코를 훌쩍이는 것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경직된 얼굴을 계속해서 우습게 구기려 노력했다. 나는 간단하게 목례하고 그 어둡고 밝은 공간에서 한 발짝씩 걸어나왔다. 문을 나서자 낯선 개와 마주쳤다. 나와 방금 전까지 대화한 사람이 키우는 개들이 그 낯선 개가 지나가자 일제히 짖었다. 주인이 나오기 전까지 멎지 않는 울음과 사 월의 스산한 공기를 폐 끝까지 밀어넣으면서 차에 탔다. 그리고 그것들과 완전히 격리되고 나서야 고르게 숨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