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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즈음의 문장 하나
임율무
2017. 12. 24. 20:36
귓속에 물이 찬 것처럼 출렁거렸다. 뒷자리에 앉아 내 허리만 잡고 있는 J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찢어진 걔의 붉은 이마에 찢은 셔츠를 감아주던 부드러운 노래의 손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시큼하고 달콤한 머루나 오디도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다. J가 준 테이프. 따라 부를 수는 있지만 걔가 먼저 부를 수 없는 노래 가사들은 썩은 열매와 함께 묻혔다. 집으로 가는 대신 J의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 줬다. 하지 못한 사과의 말들이나 사랑의 말들은 삼 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결국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커 한 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 순한 얼굴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히 들어가. 그렇게 J가 들어가고 나면 후회를 하고 앞으론 정말로 볼 수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냥 보냈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며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 뱀을, 죽였다. 허물이 남고 조각이 남아 몸 곳곳에 스며들 걸 알았지만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