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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달이 뜨는 낮

임율무 2017. 12. 23. 12:44

18일,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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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이후로 계속해서 곱씹고 있는 노래와 열아홉 살의 노래 속 감정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던 낮의 모습까지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가면서 결국엔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엉엉 우는 것조차 그에게 방해가 될 듯하여 꾹 참고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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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은 순간부터 아무런 적당한 말도 적당한 생각도 찾지 못했고 이 주제에 대해 아무와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고 싶지 않다) 어떠한 말들로 과거들과 현재들을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만둬야지 다만 안녕했으면 또 편안했으면


19일, 12월

그의 빈소에 다녀왔다.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활자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옮기기가 계속 힘이 든다. 잡을라치면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 달인지 두 달인지 전엔가 했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내가 하는 경험인데 생경하지 않고 온통 꿈만 같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졌던 줄. 해가 거의 끝에 걸려서 막 넘어가고 있었고 코너를 돌고 또 돌아서야 생겼던 내 자리와 쌓였던 눈에 얼어붙어서 깨질 것만 같았던 발.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고서야 차라리 밖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나는 차로 20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영어 학원을 다녔었고 같이 학원을 다니면서 친해진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는 밤 열 시 집으로 돌아오는 학원 버스에서 샤이니의 미니3집을 건넸다 컴백을 했다며 그리고 그 때를 기점으로 나는 샤이니의 앨범들을 하나씩 사모았고 나도 모르는 새에 그들의 노래에 푹 빠지게 되었다 (물론 덕질 수준까진 아니었고 단지 샤이니 노래들이 내 취향이었으니까) 그 때의 노래들을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듣고 있고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의 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좋아해 왔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런 내 친구들과 내 친구들의 친구들 또 그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을 보았다 전광판에 뜨는 이름과 웃고 있는 사진, 그 앞에 주저앉아서 오열하는 사람들이 내가 추위를 제외하고 처음 새긴 그의 빈소에 대한 감각이다. 웃음과 울음은 그렇게나 전염성이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 곳까지 구태여 간 것을 후회하며 나도 모르게 맺히는 눈물을 참으려고 입 속을 씹으면서 생경하지 않은 내 주위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내 친구들은 울었고 나는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의 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느냐면, 나에게도 낯선 이상한 느낌 때문이라고. 일전에 쓴 내 글 중 장례식장 풍경으로 시작하는 그것.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과 그가 처해있던 상황, 그가 하는 생각들과 말들. 그것들이 다시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조금 말이 되려나? 나는 장례식장에 대한 적지 않은 (그러나 많지도 않은) 기억이 있고 가장 최근은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것. 나는 그 곳에 가서 내 일인 마냥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 친구와는 유대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내 자아가 생기기 이전의 장례식. 초등학교 5학년 때 증조부와 증조모가 돌아가셨고 나는 증조부의 장례식에서 한 톨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증조모의 장례식엔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댔다 내가 앞서 언급한 내 글 (향)의 첫 부분은 이런 내 모습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긴 건, 나는 증조부와 증조모에게는 큰 유대감을 갖고 있었고 지금 생각해서야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종현의 빈소.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진한 국화 향에 배로 슬퍼졌다. 그러나 웃고 있는 그의 영정사진에 짧게 기도를 할 때 그리고 전광판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내 또래들 그리고 더 어린 사람들의 울음을 들을 때 두어 번 울컥 하고 참은 게 다다. 눈물이 줄줄 흐르거나 속에서 북받치는 것 같은 건 없었다. 유대감을 따지자면 고등학교 친구 아버지보다는 당연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종현에게 느끼던 것이 더 큰데 말야. 그와는 유대감이라기보단 동질감이라고 하는 게 더 옳긴 하겠다. 동질감을 느꼈었다. 비슷한 온도의 사람인 것 같고, 비슷한 말들을 품어오면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 동질감이 혹은 어떤 유대감이 내 증조부와 증조모의 죽음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그래서 내가 감히 울지도 못하게 했던 거라면. 나는 다만 그의 연소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에 울고 싶었다.


20일, 12월

1
친구가 푸른 빛의 구체를 오늘 하늘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급하게 나갔지만 우리 집이 낮아서 그런지 푸른 색이 보이진 않았다. 이틀 내내 춥더니 날도 따뜻했다. 적당히 아름답고 눈부신 날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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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래 전부터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말해 왔다. 마냥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그 사람의 몫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살아 주면 좋을 거라고.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친구는 벌써부터 괜찮아지는 것이,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웃고 대화하고 먹는 것이 죄스럽다고 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고 물었다. 엄마가 하던 말을 해 줬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다. 나도 이기적인 걸까.

3
열아홉 그의 목소리를 되풀이해서 들으면서 시린 겨울 밤 바람을 맞았다. 바깥에서, 그렇게 바람 가운데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들었다. 조금 괜찮아져도 될 거라는 이기적이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생각을 했다.